title : 윌리암슨 주교님의 Eleison Comments 제625호
name : silviadate : 2019-07-09 13:57:56hits : 25
 프로메테우스우상숭배

20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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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바티칸공의회 - 지독한 재난 -
천주께서 주재자이심을 막기 위해 숨겨진 독극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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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차 바티칸의 본질은 교회 관리들이 가톨리시즘으로 위장한 인간 찬미이다. 22차 바티칸의 새로운 인간은 현실로부터는 주관론으로 인해, 도덕으로부터는 양심으로 인해, 자연으로부터는 성총으로 인해 자유롭다. 32차 바티칸의 새교회는 더 이상 세상을 적대하지 않거니와 다른 종교도 배척하지 않는다. 새교회는 모든 이에게 친절하고 모든 이와 대화한다는 것이다. 칼데론 신부는 그의 책 제4부에서, 2차 바티칸이 새로운 종교에 해당하는지 묻고, 2차 바티칸이 더 이상 성 삼위일체께 흠숭을 표명하지 않는 까닭에 그렇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가톨리시즘의 1 계시 및 성전(聖傳), 2 경배의 중심 행위, 그리고 3 강생하신 천주가 본질적으로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1 가톨릭 신자는 이를테면 강생과 같은 대상 그 자체를 믿거나, 예컨대 천주께서 강생하셨다,”와 같이 그 대상을 표현하는 객관적 명제를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참된 교회의 교리는 바뀌었다. 명제는 신비를 불충분하게 표현한다. 하지만 명제는 신비를 올바르게 표현하는 데다가, 신자가 자기 영혼을 구하기에 충분히 표현한다. 그러나 새교회는 현대주의자이며, 현대주의자들에게는 그 어떤 명제도 객관적일 수 없다. 그러므로 새교회에서는 신비에 대한 주관적 경험만 있을 수 있다.(Dei Verbum#2; LG#4) 그리고 신비에 대한 주관적 경험은 교리를 모든 종류의 카리스마에 관한 문제의 변화에 활짝 열어놓는다. 왜냐하면 새교회에서는, 신비가 살아 있는 교회 공동체에 있고, 계시와 성전 둘 다의 교리가 변화하는 역사적 상황에서 살아 있는 교회 공동체에 맞추어 진화해야 할 수도 있고 진화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새교회 신앙은 모종의 친교에서 신비를 경험하고 해석할 수 있게 하는 정신의 틀이다. 신앙 고백문이나 신조는 쫓아갈 뿐이다. 새교회 성경은 단지 그 체험, 천주의 백성이 따를 본보기를 기본적으로 설정한 것일 뿐이다. 새교회의 정통파적 신념은 새교회 공동체와 의견이 같아서, 그 새교회 공동체를 거부하는 자는 예컨대 르페브르 대주교와 같은 최악의 이단자다.

2 흠숭 행위에 관해서는, 중세 십자가의 종교는 우울하다! 그래서 새교회는 즐거움은 그대로 두고, 희생은 몰아낼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이 천주께 빚진 자가 되게 하고, 그리스도께서 희생으로 죗값을 치르게 한 것이 인간의 죄였다면, 죄에서 벗어나야겠다. 천주는 고통을 초월해 계신다. 그래서 천주는 인간의 죄로 인해 은결들지 않으신다. 천주는 인간의 죄를 한탄하시지만, 결코 그 누구에게도 영원한 지옥으로 벌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리스도는 인간과 결속해 있음을 보이시고자 단지 성부의 도구(G&S#22)로서만 죽으셨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성부이시다. 또 성부는 인간을 영광스럽게 하시고자 십자가가 아니라 부활을 이용하셨다! 그래서 예컨대 빠스카의 신비처럼 새로 이름 붙여진 미사는 인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천주는 인간이 천주 때문에 그토록 영광스러운 것에 대해 고마워하셔야 한다! 바오로 6세가 1969년에 교회에 부과한 새미사를 분명하게 지향하는 이 신성모독적 거짓말의 연발은 전례에 관한 2차 바티칸의 교령,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Sacrosanctum Concilium)>에서 명시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암묵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대주의자들이 여전히 조심스럽게 추진해야 했던 공의회 초기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1969년부터는 브레이크가 제거되었다. 교회 전례는 이제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있다.

3 그리스도교와 참된 가톨릭교회의 중심에 있는 강생하신 천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는, 두 개의 2차 바티칸 문서, <Gaudium et Spes> <Ad Gentes>에서 직접 다루어진다. 칼데론 신부는 두 문서의 교리가 같다고 선언한다. 십자가는 끔찍해서, 고통을 통한 천주의 양자보다 단순한 평화의 인간이 되는 게 더 좋다는 것이다. 인간은 천주의 모상(인간의 자유로 말미암아)이어서, 더 자신다워질수록 더 신성해진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인간이 천주의 양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더 완전히 인간이 되기 위해서이다! 게다가 2차 바티칸은 어디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당연히 천주이심을 진술하지 않거니와, 위격의 일치를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공의회의 신학자들은 청중에 따라 전통과 새교회 신학 사이에서 이렇게 말하다가 저렇게 말하는 식으로, 말이 왔다 갔다 한다.

4 칼데론 신부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 인간의 존엄성은 2차 바티칸의 최종 목적이고, 최종 목적은 사실상 종교를 만든다. 그래서 2차 바티칸은 가톨리시즘과 다른 종교로, 그 최종 목적은 천주의 (외부적인) 영광이다. 그리하여 2차 바티칸에 따르면, 성총은 인간의 본성을 자유롭게 하고, 예수는 우리를 더 인간적이게 하기 위해 오신 사람이다. 그리고 미사는 더 이상 천주께 돌려져야 하는 희생이 아니라, 창조주를 왕위에 앉히는 인류의 감사기도이다. 왜냐하면 인류는 악을 선택하기까지도 할 수 있기에, 창조주보다 더 자유롭기 때문이다!

Kyrie ele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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