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윌리암슨 주교님의 Eleison Comments 제633호
name : silviadate : 2019-09-03 15:29:04hits : 35
 ()근대성II

2019831

633

천주는 우리에게 자유, 자유 의지의 능력을 주신다.
그러나 선과 악 사이에서택할 권리는 주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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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라는 주제에 관하여 여러 가지로 독자들을 지치게 할 위험을 무릅쓰고, 코멘트는 지난주에 여기서 인용된 보치에크 니엠체프스키(Wojcieck Niemczewski)<종교로서의 문화, 그리고 문화와 종교의 관계에 대한 탈근대적 해석> 요약문에 관하여 좀 더 논평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야말로 영혼을 구해야 하고, 영혼을 구원함에서 심각한 한 가지 위험은 우리의 정신인 가장 고차원적 능력의 맹목이요, 우리 마음의 타락이 그 뒤를 잇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정신에 가장 심각한 위험은 널리 횡행하고 있는 억측, 사상은 문제가 아니라는, 진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억측이다. 특히 공의회 문서 <Gaudium et Spes>에서 2차 바티칸이 어떻게 충실한 가톨리시즘보다 근대성을 택했는지 보라. 또 그다음으로 성비오10세회가 어떻게 성비오10세회의 충실한 설립자보다 공의회 로마인들을 택했는지, 그리고 그때마다 대다수의 사제들과 평신도들이 어떻게 졸졸 뒤따랐는지 보라.

니엠체프스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지를 알 수 있도록, 그의 생각을 순서대로 나열하며 시작해야겠다. 1 천주는 우리 각자 안에서 주관적으로 날조된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 천주는 없다. 2 그러므로 어제의 종교 및 철학의 옛 진리에는 더 이상 아무런 기초가 없다. 3 게다가 그것들은 더 이상 오늘의 현실 세계에 맞지 않으며, 모든 영역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4 더 나쁜 것은, 그것들이 실제로 현대의 진보, 또는 우리를 변화에 순응할 수 있게 해 주고 나름의 생활 방식을 한데 모으도록 우리 각자의 자유를 보장하는 선택의 문화를 막는다는 것이다. 5 그래서 근대성에 계속 적응해 있으려면, 탈근대적 인간은 인간에게 규범도 강요하지 않거니와 인간보다 우월한 그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는 이 보편적이지 않고 의무적이지 않은 선택의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6 결론적으로, 진리는 자유에, 종교는 문화에, 그리고 방침은 대세에 길을 내주어야 한다. 7 그러니 진리는 타도하고, ‘선택의 문화는 일으켜 세울지니!

슬프게도, 탈근대적 인간에게는, 정신의 범위를 넘는 현실이 자기 팔다리만큼이나 가까이 있으며, 이 정신을 벗어난 현실은 그의 정신에 전혀 좌우되지 않는 나름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이가 아프면, 생선 가게가 아닌 치과에 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법칙들은 육체적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가난한 소녀가 낙태를 한다면, 소녀는 아무리 떨치고 싶어도 양심의 가책을 떨치지 못할 것이다. 우리 인간 각자의 자유 의지는 의심할 여지 없이 자유롭다 - 이 사실에서 니엠체프스키의 선택의 문화의 가능성이 유래함 그러나 그 선택의 문화는 육체적이면서 도덕적인, 정신을 벗어난 현실의 법칙의 구조화된 체제 밖에서가 아닌 안에서만 작용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내가 영원을 위해 천국이나 지옥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는 있지만, 도덕법을 심각하게 어기고도 여전히 천국에 가는 자유는 누리지 못한다.

전성기의 고대 그리스인들은 우리 주님의 강생보다 수백 년이나 앞서 태어나서, 초자연적 성총이나 개화의 혜택을 얻지 못했다. 그렇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은 인간 생활의 도덕적 구조에 역행하여 들고 일어나는 인간의 중대하고 피할 수 없는 결과를 인지했으며 - 그들이 고안한 게 아님 - 그 들고 일어남에 ‘hubris’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교만이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선택의 문화라는 니엠체프스키의 표현은 천주를 부인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천주께 대드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문화에 유리하게 사람들의 정신을 꺾을지는 몰라도, 영원하고 입에 올리기조차 황송한 천주의 존재 혹은 영원하고 절대적인 진리의 필요성을 꺾을 힘은 하나도 없다. 예를 들어 만약 진리와 같은 그런 것이 없다면, 그것은 적어도 진리이다. 그러므로 모든 신덕도리 또는 어떤 것이건 신덕도리를 부인할 때, 그 누구도 프리메이슨만큼 독단적이지 못하며, 모든 교리를 주관적으로 훼손할 때, 그 누구도 근대주의자들과 신근대주의자들만큼 교리적이지 못하다.

간단히 말해서, 니엠체프스키와 같은 사람은 인류의 선택 영역 주변에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의 고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2차 바티칸의 성직자들은 신앙의 보고(寶庫)가 현대화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성비오10세회의 지도자들은 공의회의 로마인들이 환상을 팔아먹는 상인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선택의 문화는 그들 모두에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함으로써 끝날 것이다. 만약 그들이 가톨릭 정신을 되살리지 못한다면 그들은 영원을 잃을지도 모른다.

Kyrie ele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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