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윌리암슨 주교님의 Eleison Comments 제637호(입센의 <로스메르 저택(Rosmersholm)>)
name : silviadate : 2019-09-29 15:41:00hits : 61
 입센의 <로스메르 저택(Rosmersholm)>

2019928

637

현대인들은 자주 어둠을 제대로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놓친다면, 여전히 빛을 누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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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크 입센(Henrik Ibsen, 1828-1906)은 유명한 노르웨이 극작가로, 종종 세계적인 근대극의 아버지로 여겨졌다. 그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위대한 진실을 말했다. 그리고 성 아우구스티노는 한때 말하기를, 모든 진리는 가톨릭 신자들의 것(가톨릭 신자들의 천주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가톨릭 신자들은 때때로 비 가톨릭 신자들이 말하고 있는 진실을 비 가톨릭 신자들보다 더 잘 식별할 수 있기까지 하다. 입센의 가장 큰 진실은 19세기 후반 죽어가는 전통의 무게에 생명과 기쁨이 짓눌리는 경직된 위선적 노르웨이에서도, 여전히 인간의 정신이 항의하여 들고 일어나, 명백한 자유나 의미 없이 갇힌 존재보다 죽음을 선호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근대 사회에 대한 극에서 개별 인물에 대한 극으로 변모한 입센 후기의 세 편의 연극을 들어 이 항의를 설명해야겠다. <로스메르 저택(Rosmersholm)>(1886)은 주인공과 그의 애인의 동반자살로 끝난다. <대 건축사(Master Builder)>(1892)는 주인공이 높은 탑에서 떨어져 죽는 것으로 끝난다. 애초에 그가 올라가기를 시도한 것은 자살행위였다. <존 가브리엘 보르크만(John Gabriel Borkman)>(1896)은 주인공이 결빙된 산비탈의 추위로 동사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것은 사실상 자살 등반이었다. 그러나 각각의 경우에 주인공은 인간 정신을 옥죄는 세상에 맞서서 인간 정신의 자유를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특히 <로스메르 저택>에 시선을 돌리자. 최근에 런던에서 <로스메르 저택>을 각색한 것이 무대에 올려져 큰 성공을 거두었다. 입센은 살아있다!

모든 극에는 극적인 충돌이 필요하다. <로스메르 저택>에서는 충돌이 한편으로는 지난 200년 동안 전 지역에 모범을 보이며 격려해 온 군인들과 성직자들로 구별되는 로스메르 가문의 옛 세계와 고향, 그리고 다른 편으로는 그 모든 오래된 가치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로워지는, 떠오르는 새로운 세계 사이에 있다. 연극의 중심인물은 전직 성직자이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을 잃고 지금은 두 세계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귀족 가문의 마지막 자손인 존 로스메르이다. 한쪽에는 자유주의의 전면적인 침략으로부터 노르웨이를 구하려 하지만 정작 그 아내와 자녀들은 자유주의자를 지향하는 냉정한 보수주의자, 크롤(Kroll) 박사가 있다. 다른 쪽에는 급진파 지역 신문 <모르텐가르트(Mortensgaard)>의 편집장이 있는데, 그는 로스메르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에서 적어도 크롤 만큼이나 평판이 좋지 않다. 로스메르 자신은 이론적으로 매력적인 젊은 여성 레베카 웨스트(Rebekka West)로 말미암아 기쁨과 자유의 신세계로 넘어간 상태이다. 레베카 웨스트는 몇 년 동안 로스메르의 정신적 동반자이다.

로스메르가 크롤에게 신앙의 상실과 자유주의를 위해 공개적으로 싸우겠다는 의향에 대해 말할 때 연극은 막바지에 이른다. 크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로스메르가 인격과 위신을 부패한 자들에게 빌려주지 못하도록 행동에 돌입한다. 크롤의 압력을 받고, 레베카는 고상하지만 숨이 막힐 것 같은 출신 배경으로부터 로스메르를 벗어나게 하려는 싸움에서 그녀를 정복한 것은 사실상 그 출신 배경, 로스메르 저택임을 깨닫는다. 결국 존과 레베카가 새로운 자유와 옛 기품 둘 다를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로스메르 저택의 물레방아에 함께 뛰어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입센에 따르면, 옛 기품은 시시하고, 새로운 보수주의는 냉혹하며, 새로운 해방이라고 해서 더 낫지 않다. 덫에 걸린 부부에게 유일하게 가능할 법한 주장, 탈출구라곤 죽음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는 오늘날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온통 어두운 허튼 말일까? 아니다, 우리 세계의 사실주의 초상이다. 로스메르와 오늘날의 수십억 영혼처럼 신앙이 사라지면, 보수주의(크롤)는 궁극적으로 아무것도 보존하지 못하고, 좌익(모르텐가르트)은 신을 믿지 않는 불에 신을 믿지 않는 휘발유를 끼얹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해방(레베카)은 체력이 달리고, 자유주의의 자살 충동이 널리 퍼진다. 생명을 얻고 또한 더 풍성히 얻기를 바란다면(10,10), 로스메르는 자신 안에 참으로 고귀한 조상의 신앙을 되살려야 한다. 이는 그의 가장 훌륭한 개신교 조상을 넘어 그리스도교 노르웨이를 만든 가톨릭 신자들에게로 돌아가야 함을 뜻한다. 로스메르는 참으로 가톨릭이 돼야 한다. 그리 하면 크롤, 모르덴가르트, 레바카는 참된 해결책을 알 수 있을 것이며, 전 지역이 그리스도의 빛으로 다시 빛날 수 있다.

Kyrie ele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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